쓸데없는 이야기

'콩밭 매는 아낙네'에 대한 고찰

山中老人 2024. 11. 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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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에는 '칠갑산'이라는 노래비와 함께 '콩밭 매는 아낙네상'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천장호 출렁다리 입구에 설치된 像
칠갑공원에 설치된 像



모두 칠갑산을 향하는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像이다. 칠갑공원의 像이 '콩밭 매는' 동작에 충실한 모습인 반면, 천장호의 像은 발 아래 콩과 콩깍지를 함께 둠으로써 '콩밭'이라는확실한 메시지를 준다.





왜 하필 이 '아낙네 像'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칠갑산 등산로 입구에 세워진 것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다시피 '칠갑산'이라는 노래 때문이다. 칠갑산 노래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바로 '콩밭 매는 아낙네'인 것이다.

칠갑산 하면 '칠갑산'이라는 노래가 떠오르고, 노래 첫소절의 주인공이자 노래 자체의 이미지가 바로 '콩밭 매는 아낙네'이다.

그런데 과연 '콩밭 매는 아낙네'와 칠갑산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칠갑산 입구에 조형물이 둘씩이나 세워질 만큼 관련이 있을까.



일단 노래부터 알아보자.

'칠갑산'이라는 노래는 1979년 윤희상 노래(조운파 작사/작곡)로 처음 발표되었으며, 1989년 주병선이 리메이크하여 널리 알려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원곡보다는 주병선 노래로 알고 있다. 현재 50대 이상 세대는 거의 알 것이며, 2~30대 세대들도 임팩트 강렬한 첫소절은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느냐
홀어머니 두고 시집 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 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1~2행은 (아낙네의) 현재, 3~4행은 (아낙네의) 과거의 내용이다. 

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과거 부분]

1.  아낙네의 고향은 칠갑산(또는 칠갑산이 아주 가까운 지역)이다. 다른 지역에서 칠갑산으로 시집 온 것이 아니라 고향 칠갑산에서 다른 지역으로 시집 간 것이다. 시집 가던 날(고향을 떠나는 날) 정겨운 고향의 산새 소리가 더 애틋하게 들렸다고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2. 아낙네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다(고향을 떠났다). 굉장히 추상적이라 구체적으로 몇살 정도였는지는 알 수 없다. 노래의 시간적 배경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베적삼'이라는 부분에서 힌트를 얻자면 노래의 발표 시점인 1970년대 후반보다는 좀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베적삼을 평상복 내지는 작업복으로 입던 시기가...1950년대~1960년대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시기 여성의 평균적인 결혼 연령은 20대 초중반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 나이에 시집 간 아낙네는 그것보다 더 어린 10대 후반~20대 극초반이라고 봐야 한다. 구체적으로 17~21세 정도로 추정한다.


3. 아낙네의 고향집엔 모친이 계신다. 부친의 부재(아마도 작고)는 확실하며, 다른 가족(형제자매, 조부모, 삼촌, 조카 등)의 존재 유무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시집 가던 날 산새 소리에 가슴을 태울 만큼 뭔가 애처롭거나 안타까운 집안 사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좀더 상상을 해 보자면,

모친은 연로하시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모친을 돌봐줄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 모친의 경제적 상황은 여의치 않다. 등


4. 아낙네의 결혼은 썩 내키지 않았다. 이 부분은 더 많은 상상을 한 내용이다.

결혼 당일, 아낙네가 고향집을 떠나며 가슴을 태운 이유가 무엇일까. 위에 말한 홀로 계실 모친에 대한 걱정 때문인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어린 나이(요즘으로 치면 고등학생~대학생)에 모친의 품을 떠나 낯선 시댁으로 가야 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을 것이다.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이전, 1970년대 이전에는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고(특히 노래의 배경은 도시가 아님), 기계화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노동력이다. 때문에 농경 사회에서 혼인과 출산은 노동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행사였다. 아낙네가 어린 나이에 '원치 않은' 결혼을 해야 했던 것도 그러한 사회적 배경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한다.


[현재 부분]

5. 아낙네는 현재 '콩밭'을 매고 있다. 콩은,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노래의 배경이 되는 중부지방의 경우 대체로 5월말~6월 초 파종하여 10월 정도에 수확한다. 콩밭을 매는 시기, 즉 콩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때는 콩이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전인 6~8월 정도일 것이다. 즉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없는 콩밭에서 아낙네는 일하고 있다. 그러니 베적삼이 흠뻑 젖을 수밖에...


6. [어쩌면 가장 중요하고 이 이야기의 계기가 된 부분인데] 아낙네가 콩밭을 매고 있는 현재 시점의 이곳은 과연 어디일까?

1) 노래에는 지명에 대한 아무런 단초가 없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칠갑산'이라는 지명은 현재의 '콩밭'과 관련이 없다. 아낙네는 고향(칠갑산)을 떠나 현재 이곳으로 시집을 왔다. 물론 같은 지역 사람과 결혼하여 시댁이 아주 가까운 곳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혼 당일 고향을 떠나며 속을 태운 점', '고향 생각에 콩밭 매면서 눈물을 흘린 점'을 고려하면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는 아님이 확실하다.

2) 노래의 배경이 되는 1970년대 이전에는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대중교통도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특히 농촌, 산골 지역은 더 심했을 것이다. 주요 교통 수단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보'였을 것이다.

노래에서 아낙네의 애를 태울 정도면 걸어서 하루 이상이 걸리는 거리라고 본다. 걸어서 한두시간이면 가는 거리였다면 그렇게 속을 태우거나 눈물 지을 정도는 아니였을 테니까. 

보통 성인의 걸음으로 하루(24시간이 아니라 12시간으로 계산. 밤새 걸을 수는 없으니까)가 걸리는 거리는 대략 40~60km 정도이다.

즉, 칠갑산에 최소 40km 이상 떨어진 지역이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수백km 떨어진 거리라면 아낙네에게 너무 가혹한 설정이 되므로 50km 이내라고 생각하고 싶다. 

칠갑산을 중심으로 반경 50km(직선 거리가 아니라 도보로 이동 가능한 길을 기준으로) 이내의 지역은 부여, 공주, 홍성, 예산, 보령, 논산 등이 있다. (참고로 노래를 작사/작곡한 조운파 작가의 고향은 부여라고 한다.)


7. 아낙네의 현재 나이는 몇 살쯤일까?

노래에서 짐작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왔다는 것뿐. 20세 전후에 시집을 와서 현재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다. 

콩밭 매면서 눈물을 흘릴 만큼 설움이 많다는 부분에서 굳이 유추해 보자면, 아낙네는 아마도 고된 시집살이(또는 농사일)에 몸은 힘들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 같다. '설움'이라는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지만 시집살이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그럴싸하다.

그렇다면 갓 시집온 '새댁'은 아닐 것이고, 결혼 30년차 이상의 베테랑 주부도 아닐 것이다. 범위를 넓게 잡아도 결혼한 지 5~15년차 정도이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아낙네의 현재 나이는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일 것이다.


8. 위 항목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아낙네의 현재 감정인 '설움'의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서러워서 콩밭 매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고된 시집살이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고향에 홀로 계신 모친에 대한 걱정일 것이다. 하지만 모친 생각에 '설움'이라는 감정이 곧장 떠오르지는 않고 '홀로 계신 모친이 걱정되는데 곧장 갈 수 없는 현재 상황이 서럽다'라는 감정일 것이다. 친정과 시댁의 지리적 거리, 현재의 고된 시집살이, 고향의 모친 생각 등 복합적인 감정이지 않을까.


이상에서 내린 결론은

고향 칠갑산에서 시집 온 30대 안팎의 아낙네는 친정에 홀로 계신 모친이 걱정되지만 쉽게 갈 수 없는 현재 상황과 고된 시집살이에 대한 설움이 폭발하여 한여름 뙤약볕에  (친정에서 50km쯤 떨어진) 시댁에 있는콩밭을 매면서 눈물과 땀을 흘리고 있다.

즉, 콩밭 매는 아낙네의 고향은 칠갑산이며 현재 콩밭을 매고 있는 지역은 칠갑산은 아니다.


여기까지의 결론 도출 과정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문득 노래의 한 구절이 '생선 가시 목에 걸리듯' 제동을 걸었다.

'시집 가던 날'

노래는 현재의 콩밭 매는 아낙네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내용 구조이다. 그런데 '시집 오던 날'이 아니라 '시집 가던 날'이라고 한다.

현재 시댁의 콩밭에서 회상을 한다면 시집 '오던'이 맞다. 그런데 시집 '가던'이란다. 마치 제3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아낙네의 입장에서 이 표현이 정당화되려면 한 가지 상황밖에 없다. 현재 아낙네는 시댁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다!! 

좀 충격적이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시댁이 아니라면 어딜까. 다른 제3의 지역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며, 당연히 친정(고향)일 것이다. 즉, 친정에 돌아와 친정의 콩밭을 매고 있는 것이다.

친정으로 돌아 온 이유는? 물론 모른다. 모친을 돌보러 잠깐 들른 것일 수도 있고, 다른 일로 잠깐 들렀는데 때마침 콩밭 매는 시기여서 일을 하는 중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설움'과 '눈물'의 감정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마 친정으로 아예 복귀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댁과의 관계라든지 결혼 생활의 문제점이라든지 하는 것은 아낙네의 사생활 부분이니 함부로 짐작하지 않겠다.

모종의 이유로 친정에 돌아온 아낙네는 콩밭(친정의 콩밭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콩밭에서 일단 인부로 일하는 것인지는 모름)을 매면서 결혼 생활 동안 시달렸던 고된 시집살이가 떠올라 설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보면 어느 정도 이야기의 앞뒤는 이어진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내용이라면 좀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현재 친정에 돌아와 모친과 함께 지내고 있는데, 굳이 시집가던 날 홀로 남겨질 모친을 떠올리며 애를 태웠던 과거를 회상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모친께서 이미 작고하셨나? 많이 슬프기는 하지만 이쪽이 훨씬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다른 결론은

고향 칠갑산에서 홀어머니를 남겨 두고 다른 지역으로 시집 갔던 아낙네는 모종의 이유로 친정에 복귀하여 콩밭을 매면서 과거의 고된 시집살이와 작고하신 모친 생각(아마도 시집살이 때문에 모친을 돌보러 자주 친정에 오지 못함)에 설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콩밭을 매고 있는 지역만 달라질 뿐 아낙네의 감정 내용은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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